유재준

초고속 인터넷이란 말이 일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전자우편, 하이퍼 텍스트 등은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새로운 통신 수단으로 떠오른 인터넷은 급속히 대중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글자 그대로 정보 혁명이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면, 그 순간 뉴스는 광케이블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과거에는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사람이 말하고 움직이는 속도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빠른 정보의 전달은 이미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맞물려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이해하거나 능동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마치 장식품이나 재산처럼 단순히 모아놓고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관을 높이사는 우리의 풍토는 알맹이보다는 겉만 화려한 것을 모으는 일을 부추키고 있다. 이같은 경제적 논리를 따른다면, 빠른 속도로 정보를 모으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치장하는 일이 느리고 힘들게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 내는 작업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가치가 큰 일로 여겨지게 된다. 이런 논리가 만연된다면 우리가 만들어 낸 오리지날 지식과 기술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 우리의 '정보 자원'은 머지않아 고갈되고 말 것이다.

우리만의 오리지날 정보, 특히 과학기술에 관련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빛의 속도로 달리며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현재 과학 기술의 혁명을 몰고 온 컴퓨터, 인터넷의 Web 등의 많은 기술은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패를 전제로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 투자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제적 지원과 함께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풍토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데, 혹자는 "전 세계에 널린 것이 지식이고 기술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한다. 돈벌이가 된다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남의 나라의 기술이나 지식을 가져와 쓰면 그만이라고 한다. 소위 정보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외치는 이 시대에 높은 부가가치의 오리지날 정보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우리 모두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으려고 빛의 속도로 쫓아 달린다 해도 이미 앞서간 빛은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만의 빛깔로 세상에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야한다. 여름이 멀지 않았다.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의 결과가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모습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