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준

나는 가끔씩 학생들로 부터 왜 물리학을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느냐는 질문 을 받는다. 그 질문에 대해 나는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답하곤 하였다. 이런 대답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내가 물리학을 하는 첫째 조건이 "게으름" 인가 의아해 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나는 몇가지 해석을 붙이고자 한다.

모두들 잘 알고있는 얘기지만, 우리는 중학교 시절부터 뉴튼의 운동법칙에 익숙해 지고, 고등학교 수준이면, 포물선 운동, 행성의 운동, 그리고 지구상 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포함해서 우리 주위의 모든 움직임이 뉴튼의 운동 법칙에 따라서 예측되고 해석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실제로 우리 의 수학적 계산실력이 늘어서 점점 복잡한 역학문제들을 풀 수도 있게되지 만, 대학교 일반물리 또는 역학의 수준에 이르기 까지 고전역학적 파라다임 하에서 뉴튼 법칙을 계속해서 반복 적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 다. 따라서, 몇 안되는 뉴튼 법칙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양한 물리적 사건들 에 적용하는 것은 많은 암기력을 요구하는 다른 `과목'에 비하여 매우 경제 적이고 매력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간단한 법칙을 응용하여 복잡해 보이는 현상에서 간단한 원리를 유도해 내는 것은 물리학의 큰 장점이다. 그 런데, 이런 물리학의 매력과 장점은 나에게 `암기 과목'을 기피하는 특별한 ` 게으름'을 부추기고, 또 모든 물리 문제는 몇 개의 간단한 방정식을 풀기만 하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스러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현상들은 대부분 뉴튼의 고전역학적인 관점 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학부 역학 과목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많 은 자연현상들을 간단한 법칙과 원리에서 출발하여 약간 복잡한 수학적 조 작을 통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에 많이 놀라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 리고, 그때 까지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 정도 수준이 되면 더 이상 `게으름' 이라는 단어와 물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복잡한 역학문 제를 풀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학적 노동과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간단한 원리와 법칙, 그리 고 몇 개의 방정식이라는 물리학의 매력에 중독된 물리학도들은 쉽게 포기 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간단한 원리와 방 정식만 있으면 모든 물리 문제를 순조롭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현대물리학 에서 불확정성의 원리와 함께 새로운 양자역학적 파라다임을 접하게 되면서, 고전역학적인 투명한 만족감이 깨어지고 내면적으로 매우 불확실한 개념의 혼돈시대를 접하게 된다. 고전적인 계에서는 뉴튼 방정식의 해를 구하면 모 든 현상을 분명히 결정지을 수 있었는데, 양자적인 세계에서는 슈뢰딩거 방 정식이라는 것이 들어오고 설상가상으로 그 해로 파동함수를 구하여도 어떻 게 해석을 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점이 많게 된다. 이쯤되면 `게으름을 피우 며 간단히 할 수 있는 물리'라는 말은 목구멍 속으로 쑥 들어가게 되고, `이 제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자구책 마련에 온 힘을 기 울여야만 하게 된다.

나의 대학시절에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더무도 힘들고 어 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전역학적인 파라다임에 묶여서 양자 원리 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교수님의 강의나 말씀이 아니라 작은 의문점에도 정렬적으로 함께 토의하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었다. 어떤 선배들은 양자역학은 수학을 잘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 다고 말하기도 하고, 강의와 교과서를 잘 따라가면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양자물리의 파라다임과 원리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 보다는 고전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질문과 대답, 그리고 토론을 통해서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힐버트 공간을 기술하는 수학적인 도구 를 익히고 그것을 기본 용어로 사용하여 양자원리를 기술해야 하겠지만, 물 리적인 현상의 이해에는 수학적인 도구 만이 아니라 간단한 원리를 기반으 로 하는 논리적인 설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겠다. 특 히 고전적인 관점의 분명한 모순을 밝혀내고 그 모순의 해결을 위해 양자적 인 파라다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판단하여 끌어내는 과정을 경험하 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여러분은 단순한 수학적인 복잡성 을 추구하거나 간단한 공식에 매달리는 것에서 벗어나고, 물리적인 개념과 원리를 확장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끝없는 질문과 대답의 반복 은 분명히 여러분들의 물리적 지성을 키워줄 것이며, 위에서 말한 나의 경우 처럼 어려운 과정을 넘어서는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을 믿는다. 그러기 위해 서는 모든 참여 학생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질문을 하고 토론에 참여하며, 그 것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선배나 교수님들에게도 똑같이 좋은 문제거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선후배와 교수님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기 를 바란다.